편종: 한국과 중국 전통 타악기의 역사, 음악적 가치 심층 탐구

편종은 한국과 중국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중요한 전통 악기입니다. 편종의 기원, 역사적 변천, 독특한 구조와 연주 방식, 정교한 제작 과정, 상징적 의미, 최근 연구 및 학술 교류를 통해 편종의 가치를 탐구하고 우리 음악 문화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편종의 기원과 정의

편종은 한족 고대의 대표적인 대형 타악기로, 기원은 3,500년 전 상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기에는 세 개의 종으로 구성되었으나 주나라 시대에 발전하여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한나라 시대에 번성했습니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음악 종을 제작하고 사용한 국가로, 편종은 주로 청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크기가 다른 납작하고 둥근 종들이 음높이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T자 모양의 나무 망치나 막대로 두드려 소리를 냅니다.

한국에는 고려 예종 11년에 편종이 전래되었으나, 음률이 정확하지 않고 종의 수도 부족했습니다. 조선 시대 세종 11년에 박연의 건의로 주종소를 설치하여 국내에서 직접 편종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종소는 1429년에 완공되었으며, 편종을 독자적으로 생산하는 중요한 기관이었습니다.

편종은 궁중 아악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며,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 낙양춘, 보허자 등에 편성되어 연주되었습니다. 웅장한 취타를 연주할 때도 사용되었으며, 1920년대까지 국립국악원의 중요한 전공 과목으로 남아있었습니다. 편종과 함께 편경은 음고가 고정된 타악기로 궁중 악기의 정확한 음고를 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현재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는 189편의 편종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편종의 역사적 변천 과정

편종은 한국과 중국에서 각기 다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서주 시대부터 종이 사용되었고, 춘추전국시대 말부터 종의 수가 늘어나 궁중 연주, 군사 작전, 제사 의식 등에 활용되었습니다. 1957년 허난성에서 발굴된 종은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를 기념하여 ‘동방홍’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는 1116년에 송나라에서 편종이 들어왔지만, 음률이 맞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고려 예종 때 북송에서 편경과 함께 편종을 다시 들여왔고, 공민왕 시대에는 전란으로 소실된 편종을 명나라에서 다시 구입했습니다. 중국에서 수입한 편종의 음정이 만족스럽지 못하자, 세종 11년에 주종소를 설치하여 독자적인 편종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연은 주종소 설치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기존 편종의 음높이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박연은 북송 시대의 ‘악서’를 참고하여 편종 제작에 힘썼습니다. 종의 겉모양에 범을 새기도록 주장하여 세종의 지지를 얻었으며, 종의 크기는 동일하게 하고 두께를 다르게 하여 음률을 조절하는 방식을 결정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편종 모양이 납작하여 소리가 달라지는 문제를 표식 문양이나 금 실금을 넣어 해결했습니다.

편종은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 등에 편성되어 연주되었고, 1920년대까지 국립국악원의 중요한 전공으로 남아있었습니다.

편종의 구조와 연주 방법

편종은 16개의 종을 나무 틀에 매달아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종들은 위아래로 8개씩 두 단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나무 틀의 아랫부분은 사자 모양 받침대에 꽂혀 있고, 틀 위쪽에는 용 머리 조각이 있으며, 맨 꼭대기에는 공작과 술 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연주 시에는 뿔로 만든 망치인 각퇴로 종 아랫부분을 두드려 소리를 냅니다. 전통적으로는 아랫단을 오른손으로, 윗단을 왼손으로 번갈아 치는 것이 정통 방식이었으나, 현대에는 오른손으로만 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종의 종들은 겉보기에는 같지만 두께가 조금씩 다르며, 이 차이가 음높이를 결정합니다. 두꺼울수록 높은 음을 내고, 얇을수록 낮은 음을 냅니다. 16개의 종을 통해 12음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편종 제작 과정과 기술

편종 제작은 정교한 음률 체계를 구현하는 고도의 기술적인 작업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종의 크기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두께를 조절하여 음높이를 맞추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종 모양이 납작하면 소리가 달라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표면에 문양을 새기거나 금 실금을 넣었습니다.

편종 제작에는 구리, 주석, 납의 합금을 사용하고, 주조, 분할 주조, 납땜, 브레이징, 상감, 금 상감, 연마 등 복잡한 공정을 거쳤습니다. 종과 종을 연결하는 부분에는 T자 모양의 나무 막대를 사용했습니다.

고려 시대에도 편종과 편경을 갖추고 있었지만, 제작 기술이 부족하여 조선 초에는 악기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박연의 노력으로 편경 제작이 본격화되었고, 악기도감에서 편경을 대량으로 제작하여 종묘, 사직, 조회 등 의례에 사용했습니다.

편종의 상징성과 활용

편종은 높은 신분과 권력을 상징하는 악기로 여겨졌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상류층만이 종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종에 새겨진 비문은 당시 음악 문화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에 북송에서 아악기로 수입된 편종이 당악 음정을 따랐고, 편경과 함께 연주되었습니다. 현재는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 등에 편성되어 연주되며, 취타를 연주할 때도 사용됩니다. 국립국악원에 편종 전공이 개설되어 있었고, 현재도 관련 연구와 연주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편종 연구 및 학술 교류

국립국악원은 2013년부터 중국 하남박물원과 학술 교류를 이어오며 편종 및 편경 연구 협력을 다져왔습니다. 양 기관은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고, 논문집을 공동 발간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시 교류는 중단되었지만,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 양국의 편종·편경 소장 현황과 연구 동향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국립국악원은 편종·편경 연구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소장 종경의 실측 조사, 음원 녹음, 세종조 편종·편경 복원 및 기증, 고화질 사진 촬영 등을 진행했으며, 국립고궁박물관과 협력하여 기초조사 및 목록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결론

편종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 문화, 기술이 집약된 문화유산입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음악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지니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지속적인 연구와 학술 교류를 통해 편종의 가치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미래 세대에게 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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